[조선일보] 운조루(雲鳥樓)의 쌀뒤주

타인능해(他人能解)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는 금구몰니형(金龜沒泥形) 명당으로 유명한 '운조루'가 있다. 영조 때 삼수부사를 지낸 유이주(柳爾胄·1726~1797)가 세운 집인데, '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 사는 집'이라고 해서 운조루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집에는 독특한 모양의 쌀뒤주 하나가 곳간채에 남아 있다. 둥그런 통나무의 속을 비워 내고 만든 원통형 뒤주이다.


이 뒤주의 하단부에는 특이한 장치가 있다. 가로 5cm, 세로 10cm 정도의 조그만 직사각형 구멍을 만들어 놓고, 그 구멍을 여닫는 마개에다가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씨를 새겨 놓은 것이다. '다른 사람도 마음대로 이 마개를 열 수 있다'는 뜻이다. 누구라도 와서 쌀을 퍼갈 수 있는 뒤주인 것이다. 유씨 집안에서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베풀기 위한 용도의 뒤주였다. 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과객들도 조금씩 쌀을 가져가곤 하였다. 뒤주의 위치도 주인과 얼굴이 마주치지 않는 장소인 곳간채에 배치하였다. 퍼가는 사람의 자존심에 대한 배려였다.


이 뒤주에 들어가는 쌀의 용량은 두 가마 반. 하단부의 '타인능해' 마개를 옆으로 돌리면 쌀이 나오도록 되어 있다. 한 사람이 가져가는 쌀의 양은 보통 1~2되 분량이었다고 한다. 주인이 보지 않는다고 해서 7~8되씩 몽땅 가져가는 양심불량은 드물었다.


운조루에서 지은 논농사가 2만평. 연평균 200가마를 수확하였다. 쌀뒤주에 들어간 쌀이 1년에 36가마 분량이었으니 유씨 집안은 1년 소출의 약 18%를 없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로 지출한 셈이다. 이 집의 주인은 월말에 쌀뒤주를 체크했다. 만약 쌀이 남아 있으면, "덕을 베풀어야 집안이 오래간다. 당장에 이 쌀을 주변사람들에게 나누어줘라. 항상 그믐날에는 뒤주에 쌀이 없게 하라!"는 당부를 며느리에게 하였다고 전해진다.


동학과 여순반란사건, 6·25 좌익들의 주 활동 공간이 지리산 노고단이다. 그 노고단 밑에 자리잡은 운조루가 험한 풍파에도 보존될 수 있었던 원인은 쌀뒤주에서 나온 인심이 주변사람을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불황이 이어지면서 서민들의 생계가 어려운 상황이다. '타인능해' 쌀뒤주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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