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닷컴] 구례 운조루 9대 종부 이길순

운조루 0 26


섬진강가 아흔 아홉 간 집으로 시집을 가라 하더란다.

그 꽃 같은 각시가 이제 일흔을 넘은 할머니가 되었다.

‘구름 위를 나는 새가 머무는 곳’ 구례 운조루(雲鳥樓)의 9대 종부 이길순(72) 할머니.


“밤 다 주워야 와.”

운조루 앞에서 입장료 1000원을 받고 있는 허리 구부러진 노할머니가 일러준 딸의 행방이었다. 

그 말씀대로 마대 자루 두 포대에 밤을 가득 채워서야 돌아온 이길순 할머니는 오자마자 대문간에 밤자루부터 쏟아 부었다.


“벌거지 추리고 나서는 나락 씨러진 것 묶으러 가야 해요.”

어서 들로 나갈 맘이 바빠 폭삭허니 앉지도 못하는 운조루 마나님 발에는 검정색 고무장화가 꿰어져 있었다.


“바깥세상 보고 싶으믄 다락으로”

“소학교 4학년 다니고 해방이 됐어요. 친정 우리 할머니가 여자들 학교 보내믄 시집살이  되네 무르네 핀지나 헌다고, 그때부터 학교를 안 보내 줬어요. 그까짓 언문 배울라고 학교를 가야, 겨울에 문에다가 물을 확 핑개서 얼어갖고 녹을 동안에 다 배운다고 그래서 ‘언문’인디 그걸 배울라고 가야, 그래서 학교를 못다녔어요.”


‘조깨 단정한 집안’에는 남자 얼굴도 안 보고 딸을 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던 시절이었다. 학교를 특별히 챙기지는 않았던 유씨 집안에 그렇게 시집 온 새색시는 시아버지 귀여움을 한 몸에 받았더란다.

“사랑채 심바람 하기 힘들다고” 정지에 문을 달아내 며느리 걸음을 줄여준 시아버지였더란다. 

안마당에서 사랑마당으로 늘 씻어야 하고, 닦아야 하고, 뱅뱅 돌아서 일거리에 고단하기는 고대광실 안주인이라고 별다를 게 있었으랴. 


“왜정 때 그 이전에는 안채 여자들은 바깥 구경은 꿈도 못 꾸고 살았다고 그래요. 바깥세상이 보고 싶으믄 다락 위에 올라갔다고 그래요.”

지금도 운조루 앞들이 푸른지 누른지 훤하게 다 보이는 다락이지만 애써 올라갈 일은 없어졌다. 눈으로 보던 들을 몸으로 가꾸고 사는 농부가 됐기 때문이다.

“전에는 들일은 알도 못했어요. 빨래서답해서 밥 해묵기도 바뻤어요. 어른들 돌아가시고  들일 나간 지가 인자 30년인가 어쩐가….”

 

“그믐날에는 뒤주에 쌀이 없도록 하라!”

금환락지(金環落地) 명당에 찾아든 사람들은 더러는 사랑마당에서 안마당까지 가만가만 거닐다만 가고 더러는 툇마루에 앉아보고 잘 생긴 기둥을 보듬어 보기도 하고 가지만, 눈밝은 이들이라면 알아보는 뒤주가 있다. 어둑신한 정지간에 앉은 큰 나무뒤주. 그 마개에 써 있는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씨가 이 뒤주의 깊은 뜻을 말한다.


‘다른 사람도 마음대로 이 구멍을 열 수 있다’는 뜻이니 여기에는 류이주(柳爾胄 1726∼1797)가 이 집을 지은 이래 줄곧 이어져온 류씨 집안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는 ‘나눔’을 고민한 아름다운 유물인 것이다.


이길순 할머니는 벌거지 먹은 밤을 추리는 손길을 늦추지 않은 채로 몇 백 번도 더 설명했을 뒤주의 뜻을 일러 주었다.

“그게 가져가는 사람도 계면스럽고, 준 사람도 쑥스럽고 그런다고 그랬대요.”


두 가마 반 쌀이 들어가는 큰 뒤주에 들어가는 쌀이 1년에 36가마. 2만평 농사에 1년이면 200가마를 내던 유씨 집안은 소출의 약 20%가 없는 이들에게 흔적 없이 돌아간 것.

“항상 매달 그믐날에는 뒤주에 쌀이 없도록 하라!”는 것이 이 집안 며느리들이 지켜야 할  으뜸 가는 가르침이었으니 그 정신은 운조루 마당 곳곳에 훈훈한 이야기로 스며 있다.  



“콩 까부니라고 밤새도록 애쓰겠소”

“전에 마당에서 콩 타작을 해요. 콩을 뚜드려 놓고도 그것을 미처 못 까불고 놔두는디 밤새 마당에서 타르락타르락 소리가 나요. 그래 갖고는 한 차두는 정제(부엌)로 갖다 숨기고 한 차두는 덕석에다 가만히 몰아서 숨기고 그러는 거라요. 아랫방에 주무시는 시아버지가 그걸 알고도 내다보지를 않는대요. 소피가 마려워도 참고 내다보지를 않는대요. 날 밝아서 얼굴 보믄 ‘아무개떡 콩 까부니라고 밤새도록 애쓰겠소’ 그러고 웃고 말았대요 인자 내가 알았으니 맘 개볍게 편허니 가져가라 그런 뜻으로 그랬대요.”


없는 사람에게 소리소문 없이 생색내지 않고 베푸는 그 마음이 한날한시에 그쳤을 것인가. 

“나뭇간에 나무를 해놓고 나믄 그때가 가을인디 나뭇동이를 딸싹딸싹한 표가 난대요. 딜다보면 곡석을 뙤잭뙤잭 넣어놓은 거래요. 이 집 어르신이 그걸 알고 ‘그대로 둬라 그건 손대는 거 아니다’ 그리 말허셨다고 그래요.”


하인들이 돈살 생각으로 갖다 둔 것을 아는 척해서 무안하게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었더란다. 

너른 땅 가진 지주들의 목숨이 위태로웠던 역사 속에서도 지리산자락 운조루가 그처럼 성성한 세월을 건너 올 수 있었던 사연들이다.


굴뚝 낮추어 둔 마당

 “우리 시할머니는 밥굶기를 밥먹듯이 허고 살았대요.”

아흔아홉 간 집 안채에 늘 밥이 모자랐던 것이 이유다.

“밥굶은 사람들이 시 없이 때없이 온대요. 이녁 그릇에 담던 밥을 퍼내서 채려주고 나믄 때를 놓치고, 그러고 나믄 밥 허기 어중간허다고 물 한 그릇 마시고 굶고 말았대요.”


내 배 채울 욕심보다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의 처지를 앞세워 생각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은 곳 운조루.

그 마당에 낮추어 둔 굴뚝에는 행여 부잣집 밥하는 연기 높이 솟아 없는 집 사람들 설움 쌓일라 염려한 그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다.


“내 집에 오신 손인데 우리 먹는 짐치에다 밥 한 술 뜨고 가이다.”

열무김치 얹어 밥 한 그릇 뚝딱 드시고 들일 나서는 운조루 종부 이길순 할머니.

마당을 나서는 뒷모습이 씩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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