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독자칼럼] 내일동 쌀독과 운조루 뒤주

운조루 0 25

며칠 전 경남 밀양시 내일동에 무인 자선쌀독이 등장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동사무소 현관 모퉁이에 마련된 자선쌀독엔 독지가들이 장만한 쌀과 라면이 들어있고 주위에 가리개를 해 배고픈 사람들이 편하게 양식을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가리개를 만든 건 자선을 행하되 없는 사람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지 않으려는 배려에서 였다고 한다.


전남 구례 운조루의 자선뒤주도 베풀되 떠벌리지 않는 적선철학을 모태로 하고 있다.


류씨 집안의 고택인 이 집 곳간채에는 220여년 전통의 자선뒤주가 있다.


두 가마 반의 쌀이 들어가는 자선뒤주의 쌀구멍 마개엔 "남들도 쌀을 가져갈 수 있다"는 뜻인 '타인능해(他人能解)'란 글이 적혀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손에 직접 곡식을 쥐여주는 대신 무인 자선뒤주를 운영한 주인의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얻어가는 사람들이 쌀을 구걸하느라 주인의 눈치를 보고 자존심을 다치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의도에서 였다고 한다.


3대를 잇기 힘들다는 부를 12대나 지켜온 경주 최부잣집도 "재물은 분뇨와 같아 흩으면 거름이 되지만 쌓아두면 악취가 난다"는 말을 가훈 삼아 흉년에 남의 논밭을 사들이지 않고,주위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신경을 쓰는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가난은 섧다.


가난을 깔보는 눈빛은 더 섧다.


진심이 동반되지 않는 부자의 생색 내기용 '억지선행'앞에 모멸감을 느낀 빈자의 속마음엔 역겨움이 남을 것이다.


받는 사람은 주는 사람의 속마음을 신통하게도 읽어낸다.


베풀기는 어렵다.


베풀면서 티 내지 않기는 더 어렵다.


불경기로 온정의 손길이 줄어들고 있는 세태를 감안하면 되로 주고 말로 얼굴을 내고 싶어 하는 인지상정을 나무랄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얻어가는 사람들의 자존심까지 챙길 때 그 베풂은 더 거룩해 질 것이다.


나눔의 행렬이 이어지는 세밑에 내일동 쌀독과 운조루 뒤주가 머금은 자선과 배려의 미학이 새삼 아름답게 느껴진다.

Comments

[전북일보] 타인능해(他人能解)

댓글 0 | 조회 22
정상권 / 학교법인 성강학원 이사장 경영학박사타인능해(他人能解)전남 구례군 토지면에 오미리에는 문화류씨 10대 종가인 운조루(雲鳥樓)가 있다. 조선 영조 52년(1776년)에 낙안… 더보기

[조선일보] 명문고택, 운조루 -조용헌

댓글 0 | 조회 21
지난 2002년 ‘500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라는 책을 출간한 뒤 상당 기간 시달려야 했다. 책을 낸 뒤 이처럼 시달린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시달림은 주로 좌파진영에… 더보기

[오마이뉴스] 금환락지(金環落地) 명당 구례 운조루(雲鳥樓)

댓글 0 | 조회 20
글,사진 : 고병하지난 6월 6일 현충일에 가족과 함께 구례쪽으로 나들이를 갔다.화엄사나 연곡사같이 이름난 곳이 아니라 늘 지나치기만 했던 운조루로 향했다. 미리 인터넷으로 검색을… 더보기

[파이낸셜뉴스][특별기고]재난기간 ‘베풂의 미학’

댓글 0 | 조회 19
권욱 소방방재청장전남 구례에 가면 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 사는 집이라는 뜻의 운조루(雲鳥樓)라는 곳이 있다. 조선 영조 52년에 낙안 부사를 지낸 안동 사람 유이주가 세운 99칸 … 더보기
Now

현재 [부산일보][독자칼럼] 내일동 쌀독과 운조루 뒤주

댓글 0 | 조회 26
며칠 전 경남 밀양시 내일동에 무인 자선쌀독이 등장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동사무소 현관 모퉁이에 마련된 자선쌀독엔 독지가들이 장만한 쌀과 라면이 들어있고 주위에 가리개를 해 배고픈… 더보기

[경향신문] 운조루 벤치마킹한 광주의 쌀 뒤주 화제

댓글 0 | 조회 21
설 명절을 앞둔 25일 광주 서구 금호 1동 사무소에 ‘사랑의 쌀 뒤주’(사진)가 등장했다.이날 금호 1동 사무소 입구 현관엔 직원과 주민 등 110여명이 나와 ‘쌀 뒤주’ 설치식… 더보기

[오마이뉴스] 옛 부귀의 흔적과 누런 가을빛의 묘한 대조

댓글 0 | 조회 25
▲운조루거대한 산 지리산은 사방으로 열릴 만한 곳 어디에나 우람한 골을 열고 있다. 남쪽으로 난 골 가운데 서쪽에서부터 문수골, 피아골, 화개골, 악양골 등은 너른 벌과 우렁찬 계… 더보기

[경향신문] ‘운조루’ 지키는 곽영숙씨

댓글 0 | 조회 20
섬진강이 지리산을 부둥켜 안고 가는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운조루(雲鳥樓·국가지정민속자료 제8호). 전국 팔도에서 몰려든 답사객들은 물론 풍수가들도 문턱이 닳도록 찾는 집이다.… 더보기
언론보도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