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경남 밀양시 내일동에 무인 자선쌀독이 등장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동사무소 현관 모퉁이에 마련된 자선쌀독엔 독지가들이 장만한 쌀과 라면이 들어있고 주위에 가리개를 해 배고픈 사람들이 편하게 양식을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가리개를 만든 건 자선을 행하되 없는 사람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지 않으려는 배려에서 였다고 한다.
전남 구례 운조루의 자선뒤주도 베풀되 떠벌리지 않는 적선철학을 모태로 하고 있다.
류씨 집안의 고택인 이 집 곳간채에는 220여년 전통의 자선뒤주가 있다.
두 가마 반의 쌀이 들어가는 자선뒤주의 쌀구멍 마개엔 "남들도 쌀을 가져갈 수 있다"는 뜻인 '타인능해(他人能解)'란 글이 적혀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손에 직접 곡식을 쥐여주는 대신 무인 자선뒤주를 운영한 주인의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얻어가는 사람들이 쌀을 구걸하느라 주인의 눈치를 보고 자존심을 다치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의도에서 였다고 한다.
3대를 잇기 힘들다는 부를 12대나 지켜온 경주 최부잣집도 "재물은 분뇨와 같아 흩으면 거름이 되지만 쌓아두면 악취가 난다"는 말을 가훈 삼아 흉년에 남의 논밭을 사들이지 않고,주위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신경을 쓰는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가난은 섧다.
가난을 깔보는 눈빛은 더 섧다.
진심이 동반되지 않는 부자의 생색 내기용 '억지선행'앞에 모멸감을 느낀 빈자의 속마음엔 역겨움이 남을 것이다.
받는 사람은 주는 사람의 속마음을 신통하게도 읽어낸다.
베풀기는 어렵다.
베풀면서 티 내지 않기는 더 어렵다.
불경기로 온정의 손길이 줄어들고 있는 세태를 감안하면 되로 주고 말로 얼굴을 내고 싶어 하는 인지상정을 나무랄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얻어가는 사람들의 자존심까지 챙길 때 그 베풂은 더 거룩해 질 것이다.
나눔의 행렬이 이어지는 세밑에 내일동 쌀독과 운조루 뒤주가 머금은 자선과 배려의 미학이 새삼 아름답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