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수요기획' 3일 오후 11시30분 방송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 전라남도 구례에는 조선 정조 때의 무관 류이주가 지은 99칸의 대저택 운조루가 있다. 류이주는 수원화성과 남한산성, 상담산성, 낙원읍성 등 주로 성곽 건축과 궁궐 공사를 담당했던 사람으로, 낙안군수로 부임하면서 구례에 운조루를 지었다.
그런데 이 운조루에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이웃 사랑의 정신이 있다. 운조루의 주인들은 대대로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곡식이 닷 섬 들어가는 커다란 뒤주를 두고, 곡식을 꺼낼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 그 위에 '타인능해(他人能解)'라 적어 두었다. 이웃의 가난한 사람들이 언제든지 운조루에서 곡식을 먹을 만큼 꺼내 가라는 것이다.
류이주는 아들과 며느리에게 나눔의 미덕을 가르치고, '타인능해' 뒤주에 곡식이 떨어지지 않도록 보살피라고 일러뒀다. 받는 사람이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이 뒤주가 있는 곳에는 안사람들이 출입할 수 없도록 하기까지 했다.
KBS 1TV '수요기획'은 3일 오후 11시30분 '구례 운조루, 종손에게 고택은 무엇인가?' 편에서 구례의 고택 운조루와 류이주 후손들의 모습을 살펴본다.
지어진 지 2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운조루에는 류이주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 지리산 피아골 근처에 있던 터라, 역사의 격동기도 고스란히 겪었다.
문화재를 훔쳐가는 도둑들의 침입도 여러 차례 받았다. 종손 류홍수 씨는 이들에게 머리를 다쳐 2년여 동안 병원에서 지내기도 했다. 그 이후로도 무려 17번이나 도둑이 출몰했고, 형이 머리를 다쳐 운조루를 유지할 수 없게 되자 셋째 동생인 류정수 씨가 형을 돕기로 작정하고 직장도 버리고 서울에서 구례로 내려왔다.
어쩌면 애물단지일 수도 있는 운조루를 지키고자 후손들은 안간힘을 쓰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집은 점점 허물어져 가고, 살림은 나아지지 않는다. 구경오는 사람들은 문화재의 우수성은 이야기하면서도 관리하려고 애쓰는 후손들의 노력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행히 문화체육관광부가 나서 집을 보수하고 있다.
구례 운조루는 우리가 잊었던 이웃에 대한 배려와 나눔의 정신을 일깨울 좋은 본보기다. 아름다운 고택 운조루뿐 아니라 그곳에 사는 후손들의 삶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생각과 마음가짐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