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능해(他人能解). 구례 운조루에 있는 뒤주 구멍에 적힌 글귀다. 남들도 구멍을 열어 쌀을 가져갈 수 있다는 뜻으로 주변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문화 류씨 종가의 가훈이 적용된 사례다.
이처럼 ‘한 문중에서 맏이로만 이어온 큰집’인 종가의 남다른 점을 전래 유물과 집안 어른의 증언으로 보여주는 ‘종가 특별전’(내년 2월24일까지)이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다. 전국 종가 22곳에서 모은 물건들과 현대작가들의 미디어작품 등 156건 238점을 모아 종가 사람들의 나눔과 배려, 사회적 실천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가장 상징적인 것은 농암 이현보 종가의 애일당(愛日堂) 현판. ‘효도 하는데 하루하루를 아낀다’는 뜻을 담았다. 500년전에 남녀귀천을 가리지 않고 노인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벌인 그림이 수록된 ‘애일당구경첩’(보물 제1202호), 선조가 농암의 아들한테 “너의 집은 적선지가가 아니냐”며 하사한 어필 현판 ‘적선(積善)’도 함께 전시한다.
종가는 남자를 통한 적통 외에 종부를 통한 음식, 예절 등 가풍이 이어지는데, 진성 이씨 노송정 종가 18대 종부 최정숙이 며느리한테 보내는 편지, 1840년 김제 인동장씨 문중의 종부였던 남양홍씨가 막내며느리한테 쓴 편지도 처음으로 공개한다.
종가의 근현대 모습을 엿볼 수도 있다. 영남대를 일군 경주 최부잣집 최준이 값싼 여관에 머물 때 손자가 들고 다니며 수발했던 요강, 지역을 벗어날 수 없는 종손들이 직업삼았던 지역공무원증이나 교사 증명서 등도 눈에 띈다.
전시를 기획한 이건욱 학예사는 “이번 전시는 종가를 통해 사회의 지도층이 해야할 덕목을 되새겨 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