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문학] 나눔의 미덕 - 유응교 교수

운조루 0 29

글: 근암 유응교 (전 전북대 교수)


 


운조루는 1776년에 류이주가 낙안군수로 재직할 당시에 풍수지리상으로 아주 좋은 길지라하여 전라남도 구레군 토지면 오미동에 집터를 정하고 99칸 규모의 대 저택을 건설하면서 바깥사랑채에 운조루라는 현판을 걸었기에 민속자료로 지정할 당시에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의 도연명이 그 유명한 시 귀거래혜사에서 “구름은 마음대로 산을 넘나들고 새들은 날기에 지쳐 둥우리로 돌아가는데 나는 언제 고향으로 돌아서 가리.”라고 읊은 데서 구름 “운”자와 새 “조” 자를 인용하여 운조루라 명명한 것으로 보아 벼슬을


파워》에서 인용) 류이주는 평소에 손님 대접하기를 좋아했고 시인묵객들이 늘 사랑채에서 쉬어가곤 했는데 대접을 소홀히 하면 며느리에게 엄하게 꾸짖었다고 한다. 특히 식구는 많고 가난한 이웃들이 끼니때가 되면 밥 지을 쌀이 없는 경우를 생각해서 주인의 눈에 띄지 않는 문간 행랑채에 쌀 두가마니 반이 들어가는 쌀뒤주를 원통으로 된 나무로 만들어 세워놓고 그 안에 쌀을 가득 채워 놓았다고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쌀뒤주 앞에서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써놓은 마개의 손잡이를 돌려서 쌀이 아래로 흘러내리도록 하여 끼니를 끓일 수 있을 만큼의 쌀을 빼어 가지고 갔다고 한다. 한꺼번에 많이 쌀을 가져간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늘 쌀이 채워 있으니까 쌀을 필요이상으로 가져갈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적힌 타인능해란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마개를 풀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특히 쌀을 가져가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위하여 쌀뒤주를 주인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한 점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당시 2만 여 평의 논농사에서 수확한 200여 가마니의 쌀 중에 36 가마니의 쌀이 이웃을 위해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이웃을 사랑하고 적선을 베풀었기에 온갖 수난과 국난을 당했어도 목조주택이 230여 년이 지난 오늘날 까지 온전히 불타지 않고 전해 내려오게 되었다.





상생의 미덕, 낙안군수



운조루의 주인인 류이주가 낙안군수로 재직할 당시에 병들고 가난한 낙안군민을 친 자식처럼 돌봐주고 어려움이 있으면 즉시 해결해주는 선정을 베풀면서 상생의 기본 정신을 살려 군정을 수행하였다. 그리하여 모든 낙안 군민들이 우러러 추앙하고 부모처럼 따랐다고 한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왕으로부터 낙안읍성을 떠나 타지로 발령이 나자 온 군민이 가는 길을 막고 엎드려 울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으며 그들이 류이주의 공덕비를 만들어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일반 백성에 대한 깊은 사랑과 더불어 잘사는 상생의 선정을 베풂이 어느 정도였는지 미루어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쌀이 남아 있으면 손님 대접이 소홀한 것 아니냐고 며느리를 질책



운조루에는 선대의 정신을 이어받아 후손들이 백여 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아니하고 농가일기와 생활일기를 기록하여 후세에 남겨 놓았는데 이와 같은 기록 문화는 세계에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이 일기에는 대부분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온갖 애경사시에 어떻게 도움을 주었는지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다른 사람에 대한 깊은 관심과 배려가 잘 나타나 있는 일기를 통하여 얼마만큼 애정을 갖고 다른 사람을 돌보아주었는지 잘 알 수 있다. 특히 연말에 곳간의 쌀뒤주에 쌀이 많이 남아 있으면 평소에 손님 대접이 소홀한 것이 아니냐고 하면서 며느리를 질책했다는 기록이 일기에 있는 것으로 볼 때 얼마나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깊었는지를 알 수 있다. 또, 집안의 굴뚝 높이도 한사코 낮게 만들어 밥 짓는 연기가 가난한 이웃사람들에게 눈에 띄지 않도록 한 점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공동체를 위한 사회적 책임은 특정계층만의 의무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도 반드시 실천해야할 덕목이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세계인의 평화와 안녕을 위하여 나눔과 상생의 기부 문화를 몸소 실천함으로써 시티즌 오블리주를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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